초등학교 5 학년 아이가 부모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어미와 아비는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아이는 울지말라며 괜찮다고 나는 좋다고 했다. 어미와 아비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나는 괜찮아' 하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사실 위로 받아야 할 것은 아이였지만 눈물짓는 것도 어미, 아비였고 위로 받은 것도 어미, 아비였다.
아이는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다. 아니 어느 곳에도 반만 섞여들었다. 그래도 몸은 하나이니 어느 한 쪽을 만날 때면 그쪽에 온전히 속하려 들었으나 종종 거부 당했다. 첫 째형의 사돈집 사람들이 모이면 "저 아이가 그 아이지?"하며 대했다. 시키는대로 어머니라 불렀더니 "왜 내가 니 어머니냐"며 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 왜 그런지도 알게되었다. 그렇다고 집을 나가 나라를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가끔 서로 충돌하는 곳에서 어미가 기절이라도 하면 모두 나 때문이듯하여 억울하고 미칠 것 같았지만 참아야 했다. 아비를 탓하지도 않았다. 다 자기 때문인 것 같아 괴로왔다. 어미와 아비를 탓하기에는 다들 불쌍해 보였다. 나는 이렇게 온전한데 다들 나를 반만 인정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고 반항할 수도 없었다. 그냥 마음 속 깊은 곳에 나와 나의 느낌과 그 공기의 잔인한 향기를 숨기려 했다....
가족중에서 어른들은 항상 부담스러운 존재들이었다. 어디에도 끼어들기 어려웠다. 나이도 어렸지만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 부담임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명절이면 어린 조카들과만 놀았고 늘 외로웠다.
중학교때 읽은 카프카의 변신이란 책을 읽으며 내가 그 아침에 벌레로 변한 남자인 것 같아 괴로웠다. 카프카 마져 저들과 같은 생각인가 싶어 괴로웠다. 저들이 소설을 쓴 다면 나를 벌레로 그리겠지 싶어 괴로웠다.
아버지의 장래식장에서도 이 초등학생은 "나는 괜찮아." 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장래식장에서도 이 초등학생은 "나는 괜찮아." 라고 말했고 그러려고 노력했다.
30년 이 흘러서야 "나는 괜찮아." 라 말했던 초등학생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인정할 용기가 생겼다.
그렇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다. 많이 아팠고 아름다운 작품속의 비극적인 인물들이 모두 나 인 것같아 국어도 싫었다.
그렇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괜찮지 않지만 괜찮으려 노력한다. 다행인 것은 이제 주변에 그런 상황을 자꾸 나에게 보여주던 사람들이 없다는 것뿐.
명절이면 항상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 놀면서 어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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