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신부 (2) 썸네일형 리스트형 바보의 나눔 바보의 나눔에 가입했습니다. 민경일 신부님도 만났네요. 부디 좋은데 쓰이길 빕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추기경님 얼굴만 뵈도 눈물이 나는 건 김수환 추기경님으로 끝나는 건가요? 그 분이 스스로를 바보라 부르신것이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과 더 가까이 하지 못 해서라는 대목에서 울컥했습니다. 다만 걱정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추기경님의 뜻을 따르는것이 돈 거두어 나눠주는 일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가난과 착취를 고쳐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새 추기경님이 말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것이 이런 모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길 빕니다. 제발.. 대전교구 김유정 신부님의 "소비 자본주의 시대의 성탄" 서론 입니다. 2011년에 학교 신학잡지인 '복음과 문화'에 기고했던 글의 서론입니다. * 산책을 하다가 제과점에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한다. “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 계산을 마치자 점원이 상냥하게 말한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나오실 거세요.” 누가 나오신단 말인가? 커피, 아니, ‘커피님’이시다. ‘나오실 거예요’도 아니고, ‘나오실 거세요’란다. 한겨울에 세차장이 딸린 주유소에 들어가서 주유를 마친 후 혹시나 해서 물어본다. “오늘 세차 되나요?” 직원이 웃으며 대답한다. “오늘은 추워서 세차 하시면 차가 어세요.” 역시 여기에서도 차가, 아니 ‘차님’이 ‘어신다’. 본디 우리말은 사물이 주어인 문장의 서술어에 존칭을 붙이지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주어가 사물인 문장의 서술어에 존칭이 붙기 시작하였고, ..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