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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

cognitive dissonance in 2019 (2019년의 인지부조화)

윤석렬이 검찰총장이 될 때 열렬히 응원했다. 흠이 많아도 용장이라 생각했다. 조국사태 초기에 언론 보도 영향으로 세상이 모두 조국을 비난 할 때, 그 딸의 입시부정이란 기사들을 읽으며 나는 직업적인 지식과 겅험으로 입시부정이 아니라 판단하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 때 개혁의 선두에 설 용장이라 생각했던 윤석렬을 이제 제일 부패한 권력구조를 옹호하는 파렴치범으로 바꿔 생각해야 할 필요를 느꼈지만 망설여졌다.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내가 겪은 인지부조화 였다.

 

아주 가까운 누군가와 이야기하던 중에 요즘 윤석렬을 비난하자 얼마전 만 해도 윤석렬이어야 할 것처럼 이야기해서 결국 검찰총장이 되었는데 이젠 욕하는 거냐며 왜 이랬다 저랬다 그러냐며 진보는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 난 진보가 아닌데 말이다,,) 이 사람이 겪는 것도 결국 인지 부조화다.

 

아래는 사족이다.

몇 년전 어는 학교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학부모대표와 학생대표 그리고 교사 한 둘이 모여, 학교 현안에 대해 토론하여 정하자는 취지의 회의가 열렸다. 각자의 주장이 있었고 교사와 학생대표들은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데 학부모 대표가 노발대발 했다. 자기 의견에서 많이 벗어난 결론으로 흘러가는 것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고 마치 토론에서 밀리면 위신이 서지 않는다는 듯이 흥분했다. 이 상황을 아이들은 납득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오랜 기간 뒷담화로 남았다.

 

우리는 의논을 하고 주장을 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What is right (무엇이 옳은지)에 촛점을 맞추어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Who is right(누가 옳은지)에 따라 위신이 깎인다거나 내가 졌다는 식의 내적 결론을 내려 상황을 꼬이게 만든다.  토론이 성숙하려면 이런 태도가 발전해야 하나. 우리나라 국회도 이게 안되어서 개판인거다. What is right(무엇이 옳은지)에 집중하고 결론이 처음 내 생각과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성인이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능력인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초기 생각을 접고 보다 합리적인 것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하고 그렇게 수용하는 자신이, "욕보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멋진 능력을 지닌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 중에는 윤석렬을 그렇게 옹호하던 사람들이 이제와서 윤석렬을 내쫓아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모습에서 "쟤네들도 별거 없네, 자기 편을 막 담궈버리는구만,," 하며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도 역시 인지부조화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렬을 지지했을때 우리는 윤석렬이기에 지지했던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한 이전의 what he did(그가 과거에 한 일) 를 보고 지지했다. 이제와 what he does(그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보고서야 그를 계속 지지할 수는 없다. 검찰을 바꿔야 하니까 말이다. 그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지만 구태이며 적폐이기까지 한 구검찰조직에 충성하고 있다. 그것이 선한 의도였든 자기 조직의 막강함(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적폐였든 그가 행한 내용으로 판단하면 될일이다. 

 

.. 이런 생각에 이르자  2019년에 내게 벌어진 최대의 인지부조화는 조금 풀리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