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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s

대만(타이완)과 청년

대만의 별칭은 ‘포르모사(Formosa)’다. 16세기 말 대만에 닻을 내린 포르투갈 선원들이 빼어난 풍광을 두고 ‘아름다운 섬’이라 일컬은 데서 유래한 말이다. 500여년이 흐른 지금, 그 ‘아름다운 섬’엔 ‘구이다오(鬼島·귀도)’란 오명이 더해졌다. 대만 청년들은 대만을 ‘귀신의 섬’ 혹은 ‘귀신들린(저주받은) 섬’이라 자조한다. 경향신문이 지난달 21~26일 대만에서 직접 만난 청년들은 낮은 임금과 높은 집값, 비합리적인 정치·사회 문화를 이유로 들었다. 한국의 ‘헬조선’처럼 ‘귀도’는 대만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과 분노가 응집된 단어였다.

귀도① 월급이 오르지 않는 섬

대만 청년들은 ‘귀도’의 1차적 원인을 저임금에서 찾았다. 대학 졸업 후 평균 2만2000대만달러(약 80만8720원)에 불과한 임금을 받는다는 뜻에서 스스로를 ‘22K세대’라 불렀다.

간호사 웡카이러우(32)는 “월급이 너무 낮은 것이 대만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3년차를 맞은 지난달에야 월급이 3만3000대만달러(121만3080원)로 올랐다. 그 전까진 2만8000대만달러(102만9280원)를 받았다. 매달 저축액은 5000대만달러(18만3800원) 정도에 그친다. 그는 “양가 도움 없이는 결혼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독립해서 살려면 월급이 최소 3만5000대만달러 이상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이 굉장히 처참한 섬이 된 것은 집값은 높은데 임금은 낮아서 그렇다.” 타이베이의 대만대 캠퍼스에서 만난 류이쥔(26)은 귀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2년 전 첫 직장을 그만뒀다. “당시 받은 월 3만대만달러(110만2800원)로는 집을 못 사는 건 물론 미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저임금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대만’을 준비 중이다. 그는 중국어교육대학원에 다니며 해외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자리를 찾고 있다. “대만에 있는 어학당은 고정된 월급도 없는 계약직이고, 경력이 꽤 쌓여야 시간당 550대만달러(2만218원) 정도를 받는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하며 프랑스로 떠날 자금을 모으고 있다.

대만의 대졸 초임은 수년째 제자리다. 대만 행정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4년제 대학 졸업자 초임은 월 2만5000대만달러(91만9000원), 전문대 졸업자는 2만4000대만달러(88만2240원)다. 2011년 2만5000대만달러, 2012·2013년 2만6000대만달러(교육부 통계)에 비해 큰 차이가 없거나 후퇴했다. 최저임금도 1997~2007년 월 1만5840대만달러(58만2278원)였고 현재도 2만8대만달러(73만2493원)에 머물고 있다.

귀도② 비합리적인 직장문화가 지배하는 섬

의사 장이젠(37)은 이전에 병원을 그만둘 때 20만대만달러(735만2000원)를 물어냈다. 입사할 당시 퇴사할 때 이어받을 사람이 없으면 배상금을 내겠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썼기 때문이다. 그는 “취업할 때 흔한 관행”이라고 했다. 류이쥔 역시 2년 전 그만둔 직장에 입사할 당시 근로계약서에 배상금을 물어내야 하는 내용과 조건이 포함됐다. 당시 면접을 본 기업 모두가 이 계약서를 요구했다. 그는 “구직자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더라도 사장이 고용하지 않을까봐 계약서에 서명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귀도란 말은 대만의 수직적이고 비합리적인 근로·고용 문화를 뜻하기도 한다. 대만 자오펑은행에 다니는 류윈원(29)은 “야근수당 같은 건 당연히 받아야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기업의 이익을 고려해 야근을 하되 수당을 받으면 안된다고 한다”며 “이처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마땅한 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귀도란 말을 쓴다”고 말했다. 쉬정치(28)는 지난해 직장을 관두고 파나마로 갔다. 그는 “대만 직장은 상명하달식 구조라 신입이 다른 방식을 제안해도 상사가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며 “관료주의적 관습이 심한 곳에선 내가 발전할 수 없을 것 같아 해외 일자리를 알아봤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가 달라 힘들 때도 있지만 계속 해외에서 근무할 예정”이라고 했다.

귀도③ 집값이 비싸 독립을 꿈꿀 수 없는 섬

“집 사는 것과 애 낳는 건 포기했다. 일해서 집을 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대만사범대 국제정치대학원에 다니는 슝전샹(25)은 학교 인근 ‘야팡(雅房)’에 산다. 야팡은 화장실은 공용이고 부엌은 없는 주거형태로, 한국의 하숙과 비슷하다. 6.6㎡(2평) 되는 방의 월세는 5300대만달러(19만5000원)다. 그가 한 달에 아르바이트 두 개를 해서 버는 돈은 1만2000대만달러다. 방세가 저렴한 편이라고 해도 생활비를 빼면 부담스럽다. 그는 “방세는 부모님의 도움을 보태서 충당한다. 집을 살 가능성이 없으니 앞으로도 월세를 살아야 한다”며 “아마 타이베이에 살면서 저축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10여년간 집값이 크게 올라 대만 청년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더욱 힘들어졌다. 지난해 수도 타이베이의 소득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16배를 기록했다. 2008년 8.79배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뛴 것이다. ‘PIR 16’은 중간 수준 소득자가 중간 수준의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고 16년간 월급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수입의 절반만 저축하면 32년을 모아야 한다. 지난해 서울의 PIR는 7.3배였다(한국감정원). 보통 PIR가 5배를 넘으면 주택 가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본다.

자오펑은행에 다니는 류윈원은 방세 부담을 피해 부모님과 함께 산다. 한국의 산업은행과 비슷한 자오펑은행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안정적이라 공무원과 더불어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장이다. 6년차인 그의 월급은 4만대만달러(147만400원) 정도다. 그런 그도 “소득에 비해 집값이 비싸 독립과 결혼을 늦추고 있다”며 “독립을 하려면 결국 부모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부모에게 의존하는 대만 젊은이들을 ‘딸기세대’ 혹은 ‘복숭아족’이라 부른다. 청년들의 나약함과 ‘노력 부족’을 기성세대들이 겉모습은 아름다우나 쉽게 무르는 과일에 빗댄 표현이다. 청년들은 고개를 흔든다. 리우윈웬은 “부모 세대엔 경제도 발전하고 나라도 성장했다. 그 결과 윗세대들은 조금만 노력해도 크게 보답받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학원생 저우윈정(25)도 “부모 세대보다 잘살 수 있으리란 기대가 없다. 객관적으로 볼 때 집값이 너무 비싸고 젊은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찾을 기회가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귀도④ 정치·사회에서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나는 섬

“대만에서만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사건들 때문에 대만을 ‘귀도’라 부른다. 정말로 귀신을 봤을 때처럼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류윈원은 ‘사라진 CCTV’를 예로 들며 귀도를 설명했다. ‘사라진 CCTV’란 2013년 한 청년이 군 가혹행위로 사망했으나 군당국이 “공교롭게도 학대 당시의 CCTV 녹화분만 삭제돼 있다”고 밝힌 사건을 뜻한다. 곧바로 사건 축소 의혹이 일었다. 류윈원은 “귀도가 차라리 먹고살기 힘들단 이유에서만 비롯된 말이라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대만 청년들은 사회 정의가 사라진 현실을 두고도 귀도란 표현을 쓴다. 한국 청년들이 ‘헬조선’을 논할 때 미개함을 언급하는 맥락과 유사하다. 대만정치대에 재학 중인 랴오하오샹(20)은 “유명 식품기업이 폐식용유를 이용해 만든 라면을 팔다가 적발됐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며 “문제가 생겼는데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을 때 ‘역시 대만은 귀도’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청년들 사이에선 특히 오랜 기간 정권을 잡아왔던 국민당의 ‘구태’에 대한 반감이 컸다. 불투명하고 부패한 정치를 한다는 이유에서다. ‘사라진 CCTV’ 사건도 국민당 집권기에 벌어졌다. 프로 바둑기사 린위샹(32)은 “국민당은 참신한 사람을 내세우지 않고 좋은 자리를 대물림하려 한다”며 “지난 타이베이시장 선거에서 국민당 유력 인사의 아들이 후보로 나오는 것을 보고 반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저우윈정 역시 “국민당은 청년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개혁의지 없이 기득권층에만 집중했으며 부패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돼왔다”고 말했다.

국민당의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정치 과정에 대한 분노는 2014년 반서비스무역운동, 이른바 ‘해바라기운동’에서 정점을 찍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4년 3월17일 국민당이 서비스산업 개방을 골자로 하는 중국과의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을 날치기 통과시키자, 이튿날 대학생을 비롯한 시위대가 입법원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점거는 24일이나 이어졌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정치대 학생 주옌천(21)은 “중국과 협정을 맺으면 대만 내 서비스 일자리가 줄어들어 대다수 노동계층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데, 이를 사회적 합의 없이 비민주적으로 통과시킨 점이 아쉬웠다”며 “이런 관행이 변하지 않는 한 대만은 귀도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주거운동 단체인 아워스의 ‘새둥지운동’ 포스터.<br />아워스 공식 페이스북

대만 주거운동 단체인 아워스의 ‘새둥지운동’ 포스터. 아워스 공식 페이스북

귀도⑤ “귀도를 넘자” 몸부림치는 청년들

대만 청년들은 ‘귀신의 섬’을 다시 ‘아름다운 섬’으로 돌리기 위해 스스로 나섰다. 방법은 투표였다.

지난 1월 총통과 입법위원 선거를 앞두고 대만대·정치대·대만사범대 등 주요 대학에선 귀향 버스가 꾸려졌다. 부재자 투표 제도가 없는 대만에서 학생들의 투표를 돕고자 학생회가 마련한 것이었다.

슝전샹 역시 투표일 기차를 타고 남쪽 타이난까지 갔다. 그는 “2년 전부터 정부에 불만이 많았는데 투표하지 않으면 내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게 되니 고향에 갔다”며 “충분한 임금을 주는 일자리가 별로 없는 현실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파나마에서 근무하는 쉬정치는 귀국해서 투표했다. 그는 “구세대에 머무르고 있는 정치인들이 퇴출되고 더 많은 청년세대가 기회를 잡길 바란다”고 했다. 대만싱크탱크는 20~29세 청년층의 74.5%가 지난 총통 선거에 참여했다고 추정했다. 전체 투표율 66.27%를 웃돌고, 2012년 총통 선거의 청년층 투표율(약 60%)보다 크게 높아진 것이다.

대만 청년들이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투표와 정권교체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취자오샹 대만사범대 정치학 교수(60)는 “청년들은 대만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너무 의존한 나머지 정치적으로 흡수될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대외적으로 대만에 경제적 제재를 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반감이 친중국적 성향의 국민당을 거부하고, 변화를 택하는 형태로 폭발했다는 뜻이다. 그는 “해바라기운동에서 알 수 있듯 젊은 세대는 중국이 대만의 경제성장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피부에 와닿게 느낀다”고 밝혔다. 류진희 정치대 교수는 “지금 청년들은 과거 민진당의 대만 인식 교육에 영향을 받은 세대로, 권위독재적 통치방식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며 “두 번의 정권교체를 경험한 최초의 세대이며, 시민운동 영역도 자각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귀신섬에 산다”고 자조하면서도 ‘딸기처럼 물러터진’ 청년들은 ‘한데 뭉쳐 정권을 교체한’ 경험을 공유하게 됐다. 그러나 이들은 그로부터 한 달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치권에서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슝전샹은 “이번 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합한 정치를 하는지 감독해야 된다”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또다시 정권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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