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 나를 당황케 한다. 하지만 그런 당황스러움을 겪을 용기가 없다면 진실을 만나기는 힘들다.
다음은 누구의 말일까?
나는 어떤 형태로든 흑인종과 백인종의 사회적, 정치적 동등권을 이룩해야 한다고 하는 생각에 찬성할 마음도 없고 찬성한 일도 없다는 사실, 그리고 흑인들에게 투표권이나 배심원이 될 자격을 준다거나 그들에게 공직을 감당하게 한다든가, 백인들과 결혼하게 한다는 생각에 찬성할 마음도 없고 찬성한 일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천명하는 바이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흑인종과 백인종 사이에는 차이점이 너무나도 커서 내가 믿기로는 두 인종이 사회적, 정치적 동등권을 유지하면서 함께 산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인종이 함께 살 수 없지만 함께 살아야 할 경우라면 반드시 지위의 우열이 구분되어야 하겠고,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백인종에 부여된 우월권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감하는 바이다.(James Cone, Black Theology and Black Power에서 인용.)
이 말은 아브라함 링컨의 말이다.
남북전쟁때 노예해방을 선언한 것은 전략적인 선택이지 링컨의 인도주의를 나타낸 것이 아니다.
링컨의 벌거벗은 모습이다. 링컨은 인도주의자가 아니라 남부군에 열세여서 곧 전쟁에서 질 상황 속에서 궁여지책으로 노예해방을 이용한 전략가일 뿐이다.
지금의 흑인 해방은 링컨이 만든 것이 아니라 수 많은 흑인들이 흘린 피와 땀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이다.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도 해방 후 꾸준한 국민들의 노력과 투쟁과 땀과 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일개 권력자들의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불온한 권력자들에 대항하여 싸웠고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낫과 호미를 들고 총을 든 외세와 싸웠다.
근래의 경험을 통해 이런 결론에 다다른다.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라는 것.
우리 후손은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자신들의 뜻을 펼치는 인재가 되기를 빈다.